작년에 들은 교양 수업 리포트를 블로그에 올려두니 읽으러 오는 사람이 가끔 한 명씩 있는지, 관리자 화면에 유입 키워드가 뜨곤 한다.
'트랜스휴머니즘과여성운동'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트랜스휴먼의 철학적 의미는 심오한 것이 있겠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 화두가 된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요즘은 성형수술에 관한 생각이 이렇게 바뀌었다.
성형 수술로 예뻐진 여자들을 성형 괴물이라고 손가락질하지만, 의학 기술을 활용해 신체를 개선하는 것이 꼭 나쁜 일인가 하면 답하기 쉽지 않다.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를 병원에서 치료하고 치아도 보수하는데, 심미적인 만족감을 위해 피부와 골격을 좀 개선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없지 않나 싶다. 물론 나는 피치 못한 사정이 없으면 몸에 칼을 대기 싫어하는 사람이고, 의료계/의약계의 돈벌이를 위해 조장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피치 못할'이라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거다. 게다가 여성은 특히 외모를 개선하면 생식 가치가 상승하므로 투자 대비 효용도 크다. 결국 남자들이 예쁜 여자를 찾으니 여자들이 성형을 하는 거 아닌가.
내 글이 어떻게 링크돼 있는지 궁금해 네이버에 검색했다가, 이 주제에 관해 다른 사람이 올린 글이 있어 읽어봤다.
https://cafe.naver.com/kovedoc/25306
다음으로, 위에 링크한 글을 읽다 보니 이런 얘기가 있다.
Bilek은 트랜스젠더 운동이 대중의 믿음과는 달리 소외된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녀는 이 운동이 LGBTQ+ 커뮤니티의 시민권을 사용하여 트랜스젠더뿐만 아니라 가족을 시작하려는 레즈비언과 게이에게도 도움이 될 보조 생식 기술을 합법화하고 정상화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내가 요즘 하는 생각은 이렇다.
인간은 유성 생식을 하는 종이라 정자와 난자가 만나야 후세가 태어날 수 있고, 그러기 위해 남자가 음경을 여자의 질에 삽입해 정액을 분출하도록 생식 기관이 정교하게 갖춰져 있다. 그리고 여성은 아이를 낳는 데 적합하게 신체가 발달하고, 남성은 그런 여성과 짝을 이루는 데 적합한 몸을 갖춘다. 대다수의 사람은 유성 생식에 적합한 배우자감에게 본능적으로 호감을 느낀다. 그래서 동성애를 혐오하는 이들은 이러한 신체 구조에서 출발해 이성애가 자연스럽고, 그렇지 않은 동성애나 트랜스젠더가 잘못됐다고 여긴다.
그런데 기존에 없던 새로운 종의 생명체를 창조할 수 있다고 상상해 보자. 윤리적 거부감이 든다면 게임이나 시뮬레이션이라고 가정하면 된다. 생명체는 죽게 마련이니, 죽기 전에 후대를 생산하게 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이 생명체의 재생산을 어떻게 구현할까? 유성 생식 말고도 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유성 생식이 단순히 재생산을 위해 택할 수 있는 여러 기제 중 한 가지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인간이 반드시 유성 생식으로 후대를 생산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조금 약해진다. 동성 커플이나 트랜스젠더와 일반인 사이의 커플에 관해 자연스럽고 말고를 따져야 하는지 의심이 생긴다. 아직 엄마가 아빠보다 육아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등 전통적인 남녀 역할 구분이 건재하지만, 어차피 요즘은 이성 부부들도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걸 꺼리는 데다 보육/교육을 가정 바깥 사회에서 상당 부분 처리하고 있으니 동성 커플이 아이를 키우는 것과 다른 점도 줄어들고 있다. 또한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바뀐 것도 모자라 '핵개인'의 시대라는 말까지 생겼고 '가족'의 구성도 다양하다.
세상이 이렇게 바뀐 마당에, 불임/난임 부부가 인공 수정 기술을 사용하는 것과 동성 부부가 그들의 자녀를 갖기 위해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을까 싶다. 이성 부부든 동성 부부든, 각자의 유전자를 반씩 섞은 아이를 갖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인간이 개나 고양이와 유전자를 섞어 생명체를 만들 수 있다면, 자신의 반려동물과 결혼하려는 사람도 꽤 많을 거다.
어라, 그러고 보니 도나 해러웨이가 사이보그 선언 뒤에 반려종 선언을 했네?
나 자신이 독창적으로 생각한다고 여기는 것들 대부분이, 어쩌면 전부 다가, 어디서 주워 들었거나 읽은 데서 시작했음이 틀림없다.
이 글을 챗GPT에 읽힌 뒤에 DALL·E로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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