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학기/삶과사색:인문학…

[과제] 포스트휴머니즘과 ⟨사이보그 선언⟩

서사대생 2024. 4. 12. 12:22

(작성일: 2023. 5. 7.)


⟨사이보그 선언⟩은 1985년 소셜리스트 리뷰에 발표된 도나 해러웨이의 논문으로, 레이건-대처 시대에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문제 의식을 담았다.(최유미)
해러웨이는 캐리 울프와의 대담에서, ⟨사이보그 선언⟩을 쓰게 된 경위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레이건 정부 초기에 (그때가 80년대 초반이었죠) 《사회주의 리뷰》의 웨스트 코스트 콜렉티브가 저를 포함해 여러 맥락에서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로 간주되는 사람들—상당히 광범위한 뜻을 함축하던 정치 구성체입니다—에게 원고를 청탁했어요. 나중에 레이건-대처 시대로 기억하게 된 당시의 역사적 순간에, 무엇이 가능하고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글을 몇 페이지 써달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60년대가 정말로 끝났다는 사실을 모를 수 없었고, 더 큰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정치와 상상력에 대해 품고 있던 거대한 희망을 잃지 않으려면 운동 내부에서 발생한 심각한 문제들을 정말로 손봐야 할 시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사이보그 선언〉은 이런 제안을 받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Harraway 2016/2019)

‘사이보그(cyborg)’라는 단어는 ‘cybernetic organism’에서 온 것으로, ‘기계와 유기체(모든 생명체)의 합성물’을 뜻하며(김윤경, 2023a), ‘인공두뇌 유기체’로 번역된다.
페미니즘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사이보그를 왜 끌어들였을까? SF의 팬이었던 해러웨이는 사이보그 이미지를 문제 해결의 실마리로 여겼다. 해러웨이는 ⟨사이보그 선언⟩에서 “우리 자신에게 우리의 몸과 도구를 설명해왔던 이원론의 미로에서 탈출하는 길을 보여줄 수” 있는 사이보그 이미지를 차용했다.(Harraway 2016/2019)
남녀 관계를 적대적 모순 관계로 보는 급진 페미니즘은 남성=가해자, 여성=피해자로 보며, 피해자가 남성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전략으로 ‘생존자/피해자’ 철학을 가지는 길로 나아갔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도나 해러웨이는 페미니즘 운동의 “순수성 및 그와 결부된 피해자됨(victimhood)”을 유일한 통찰 근거로 생겨난 피해를 반성하고 “피해자됨”의 페미니즘 운동을 넘어설 것을 제안한다.(정호영 1920/2019)

주로 SF 서사물의 기계-인간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던 ‘사이보그’라는 단어를, 해러웨이는 ⟨사이보그 선언⟩에서 포스트휴먼적 존재 및 사유에 대한 ‘은유’로 사용했다(김윤경, 2023a). 그런데 ‘사이보그’ 자체는 포스트휴먼적 존재라고 볼 수 있지만, 해러웨이가 ‘사이보그’를 통해 은유하고자 했던 대상은 ‘포스트휴먼’보다는 ‘휴먼’에 초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별, 인종, 계급 등이 본질적인 통일성에 대한 믿음의 토대를 제공할 수 없다’라는 문제, 즉 기존 여성운동에서 배제되는 이들이 발생한다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캐리 울프와의 대담에서 해러웨이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에서 드러난다.
『아시다시피 저는 포스트휴머니즘이라는 용어는 좋아한 적이 없어요. 우리가 볼 때 포스트휴먼은 불합리하죠.』 『그러니까 구호가 필요하다면 이런 게 있겠죠. “포스트휴머니즘이 아니라 퇴비다!” “끝내주는 퇴비를 만들자!” (베스 스티븐스와 애니 스프링클의 표현입니다.)』 (Harraway 2016/2019)

⟨사이보그 선언⟩이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에 관한 저작이고 ‘휴먼’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라고 간주할 때, ‘포스트휴먼’ 시대의 인문학이나 인간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인간 중심적 사고가 ‘인간/백인/남성/이성/정상/주류/규범’이고 포스트휴먼적 사고가 ‘비인간/유색인/여성/감성/비정상/비주류/일탈’에 대한 사고라고 할 때, 기존 페미니즘 논의에서 소외되었던 아시아 여성을 표지에 등장시킨 사이보그 선언의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포스트휴먼적 사고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포스트휴먼의 특징인 ‘혼종성, 이질성, 차이’만으로는 포스트휴먼을 온전히 정의할 수 없다. ‘포스트휴먼’은 “인간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신인류. 현재의 신체적, 지적으로 한계가 많은 호모 사피엔스가 트랜스휴먼의 강화된 형태를 거쳐서 마침내 도달하게 될, 기존의 인류 개념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지에 도달한 존재”이다(김윤경, 2023b).
이러한 ‘포스트휴먼’ 자체에 관한 논의가 없이 ‘비인간/유색인/여성/감성/비정상/비주류/일탈’에 대한 사고만으로는 ‘포스트휴먼적 사고’로 인정받기 곤란할 것이다. 다행히도(?) ⟨사이보그 선언⟩은 사이보그 자체를 논의의 주된 대상으로 선정함으로써, 트랜스휴머니즘적 사고 또는 포스트휴머니즘적 사고를 한다고 볼 수 있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렇다면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김윤경(2023b)은 포스트휴머니즘을 기술유토피아(트랜스휴머니즘), 기술디스토피아(기술혐오주의), 사이보그 선언(페미니즘)의 세 입장으로 구분하고, 페미니즘을 “기존의 인간 중심적 사고(인간을 돕는 기계, 인간을 해치는 기계)인 기술유토피아/디스토피아를 모두 비판하며 ‘새로운 존재론’ 모색하려는 입장”으로 보았다. 이 견해를 따른다면 페미니즘은 포스트휴머니즘의 핵심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단, 이때의 페미니즘이란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나 급진적 페미니즘보다는, ⟨사이보그 선언⟩을 통해 해러웨이가 제시한 사이보그 페미니즘에 한정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해러웨이는 ⟨반려종 선언⟩에서 ‘사이보그’를 용도 폐기하고 ‘반려종’을 주창한다.
『나는 1980년대 중반 레이건의 스타워즈 시대에 페미니즘 작업을 하기 위해 사이보그를 전유했다. 지난 천 년이 끝날 무렵, 사이보그는 비판적 탐사에 필요한 실마리를 엮어내는 일을 웬만한 양치기 개보다 잘해낼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살 만한 자연문화의 느린 성장을 추구하는 대신, 물 없이 불가능한 지구 살림을 탄소에 기반을 둔 예산으로 통치하겠다고 두 번째 부시 정권이 위협하는 지금, 과학학 및 페미니즘의 이론적 도구를 제작하는 일을 거들 마음으로, 기분 좋게 개에게 다가가서 개집의 탄생을 탐사할 생각이다. “지구에서 살아남으로면 사이보그가 되자”라는 주홍글씨를 충분히 오래 달고 살아왔으니, 이제는 개 스포츠를 즐기는 슈츠훈트 여성이 아니면 절대 떠올릴 수 없는 구호를 내 로고로 만들 생각이다. “빨리 뛰어! 꽉 물어!”』(Harraway, 2016/2019)

서로의 혓바닥을 통해 바이러스 벡터를 교환한 반려종은 혼종성을 띠며, ‘사이보그’라는 ‘트랜스휴먼의 강화된 형태’를 거쳐 ‘마침내 도달하게 된’, “기존의 인류 개념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지에 도달한 존재”인 ‘포스트휴먼’일지도 모른다.

참고 문헌

김윤경(2023a). 삶과 사색: 10주차 강의 - 우리는 모두 사이보그다!. 서울사이버대학교.
김윤경(2023b). 삶과 사색: 1주차 강의 -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포스트휴먼 인문학. 서울사이버대학교.
정호영. (2019). ⟨알렉싼드라 꼴론따이의 “공산주의와 가족”⟩ 해제, http://lodong.org/wp/archives/12605
최유미, 다나 해러웨이, 곤란함과 함께 하기, http://www.artnstudy.com/n_lecture/note/도나_해러웨이,_곤란함과_함께하기_01.pdf
Harraway, J. D. (2016). Manifestly Harraway. 황희선 역. (2019). 사이보그 선언(e-book). 서울: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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