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쯤 전에 문득 ‘챗GPT 관련 공모전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인문사회통합성과확산센터에서 진행 중인 것이 있었다. 응모하기 전에는 이런 기관이 있는지도 몰랐다.
https://hasworld.org/ur/forum/ideaContest
참가 대상이 고등학생부터 대학원생까지로 되어 있는데, 나도 대학생이니 참가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응모했다.
크게 두 가지 아이디어를 써서 냈다. 챗GPT와 클로드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 챗GPT를 사회 문제 발견부터 해결 방법 도출, 성과 홍보까지에 활용할 수 있다.
- 인문사회 분야에 특화한 GPT를 개발해 활용할 수 있다.
학생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받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려고 학교 이메일 주소를 사용했다.
지난달 말에 본선 진출을 알리는 메일을 받았다.
발표 대본을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노트에 쓰고, 딱 한 번 리허설해서 시간을 재고 발표 시간 제한인 6분에 맞춰 조정했다. 발표용 자료와 포스터를 만들어 보낸 후로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오늘 2차 심사와 시상이 있었다. 행사가 열리는 더케이호텔로 향했다. 무스타파 술레이만의 책 ⟪더 커밍 웨이브⟫를 챙겼다.
회사에 쉰다고 말해뒀지만 업무 메일이 와 있어서, 지하철 타고 가면서 스마트폰으로 일을 처리했다.
총 81팀 중 13팀이 본선에 진출했고, 본선 진출자는 모두 장려상 이상을 수상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다른 학생들이 발표하는 동안 슬랙으로 연락이 온다. 건성으로 들으며 일을 하느라 내 차례가 된지도 모르고 있다가 장내가 조용해지길래 고개를 드니 내 슬라이드가 화면에 떠 있다.
연단에 올라가니 컴퓨터가 없고 프레젠테이션용 리모컨만 놓여 있다. 즉, 파워포인트 발표자용 화면을 볼 수 없고, 슬라이드 노트에 써둔 대본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즉석에서 생각나는 대로 편안하게 얘기했다. 중간에 리모컨이 잘 작동하지 않아서 맨 뒤쪽 슬라이드는 틀지도 않고 말로 때웠다.
발표하고 내려오니 더 이상 회사에서 연락도 없고 해서 편안하게 얘기를 들었다. 학생들이라 그런지 공모전 취지와 맞지 않는 얘기를 하는 팀도 더러 있었지만, 대체로 자료도 깔끔하게 잘 만들고 발표도 잘했다. 그리고 서비스 기획안을 만들어 투자자에게 피칭하듯 하는 팀들이 여럿 있었다.
점심 시간에 화장실 가면서 로비를 둘러봤다.
주최측에서 나눠준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고 오후에 개막식에 참석했다. ‘테이프 커팅식’을 화면을 통하지 않고 직접 본 것이 처음이다.
수상 시간이 되니 내 이름을 맨 먼저 부른다. 장려상이다.
많이 바빴는지 상장에 이름도 안 쓰고 나눠준다. 피켓도 가져가라고 해서 받아왔다.
시상이 끝나자 학생들이 모두 빠져나가서 휑해졌다. 왠지 자리를 지켜줘야 할 것 같아서 앉아 있었더니 공대 교수님이 나와서 강연을 하신다.
집에 와서 상장에 네임펜으로 이름을 써 넣었다. 중학교 땐가 고등학교 땐가 펜글씨 부에 들길 잘했다. 삼십 몇 년이 흘렀어도 손으로 배운 건 남아 있나 보다.
상장을 보니 발행 번호가 7번이다. 금/은/동상 수상자가 6명이었으니, 내가 7등이었던 걸로 보인다. 조금 더 분발해서 6번을 받았으면 상금을 받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리 사소한 아이디어라 할지라도 남에게 공식적으로 인정받으려면 문서를 만들고 발표하는 귀찮은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걸 느꼈다. 이 경험이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방식과 절차적으로는 다소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틀은 다르지 않을 거라고 본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건, 같은 주제를 두고 여러 사람이 각자 고민한 흔적을 엿보는 기회를 가졌다는 점이다.
특히 학생이라면 공모전을 경험해 두면 사회생활 할 때 제안 발표 등을 잘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