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트’라고 하면 그림 그릴 때 물감을 조금씩 짜서 담는 판을 떠올리거나, 각종 소프트웨어에서 색상을 선택하는 기능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류 분야에서는 다량의 화물을 쌓아서 지게차 등으로 한 번에 옮기기 쉽도록 만든 바닥을 팔레트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팔레트와 조금 다르지만, 아마존에서는 배송할 상품을 채운 선반을 통째로 들어올려 옮기는 로봇이 쓰인다. 가정용 로봇청소기처럼 생겼다.
https://www.youtube.com/watch?v=a77XyUI-zXo
한편, 팔레트를 드론과 결합한 ‘날아다니는 팔레트’ 아이디어도 있다. 누가 처음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2022년에 나온 논문도 있다.
https://ieeexplore.ieee.org/document/9676362/
이런 것을 팔레트론(palletron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비행 카트’라고 소개한 뉴스를 봤다.
팔레트론에 사람이 힘을 가하면 그 의도를 파악해 드론이 자동으로 움직이게 하는 기술을 국내 연구 팀이 개발해 논문을 냈다는 이야기다. 영상에 팔레트론의 실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댓글이 많이 달렸는데, 그에 관해서는 후술하겠다.
로봇신문에 좀 더 상세한 기사가 걸려 있다.
http://m.irobot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177
논문이 실린 곳은 무려 IEEE다.
https://ieeexplore.ieee.org/document/10563997
IEEE와 제휴한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면 별도로 요금을 내지 않고 읽을 수 있다고 하는데, 내가 재학 중인 서울사이버대학교의 전자도서관 페이지를 보면 IEEE에 관해 언급이 없다.
다행히 깃허브에 논문이 올라와 있다. 아직 자세히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이 연구는 분명히 가치 있고, 내게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https://dongjaelee95.github.io/files/2024RAL_sj.pdf
하지만 유튜브 영상에 부정적인 댓글을 단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틀린 말을 한 건 아닐 것이다. 댓글을 단 사람 중에 드론 전문가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때로는 전문가보다 일반인이 본질을 더 잘 꿰뚫어 본다.
사람들이 가장 문제로 꼽은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 소음
- 분진
- 무게
나도 영상을 봤을 때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손바닥만 한 DJI Neo도 실내에서 1m 이내로 접근하면 너무 시끄러워 견디기 힘들다. 화물을 옮길 정도의 힘을 내는 큰 드론을 코앞에서 사용하려면 작업자가 귀덮개를 써야 한다. 먼지 날림도 심할 테니 방진 마스크와 고글을 쓰지 않고는 작업하기 힘들 것이다.
또한 장시간 작업하려면 배터리를 계속 갈아 끼워야 하는 불편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프로펠러가 분리되거나 파손되어 팔레트 옆면을 뚫고 사람을 향해 날아간다면, 신체에 상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여러 문제점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역시 팔레트론이 짐을 옮기는 데 한계가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 한계를 수치로 계산할 수 있다면 어떨까? 작년에 수강한 드론설계기초 과목에서 배운 것을 활용하면, 팔레트론이 최대 몇 kg까지 들어올릴 수 있을지 계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교안을 찾아보니, 시중의 멀티콥터 드론들의 자체중량과 최대이륙중량을 근거로 계산한 디스크 로딩은 약 0.10~0.12 kg/dm^2이다. 즉, 10kg을 들어올리려면 1제곱미터의 익면이 필요하다.
좀 더 와닿도록 실제 드론의 예를 들어 보겠다. DJI의 농업용 드론인 MG-1P의 대각선 축간 거리가 1.5m이고, 표준 작업 탑재 하중이 10kg이다.
https://www.dji.com/kr/mg-1p/info
아래 사진을 보면 어느 정도 크기인지 감이 온다.
10kg을 나르려면 최소한 이 정도 크기의 드론이 필요하다. 잘하면 가로세로 2m인 팔레트에 집어 넣을 수 있을 것인데, 팔레트 무게는 고려하지 않았으므로, 실제로는 크기를 더 키우든지 짐을 적게 실어야 할 것이다.
팔레트론의 무게는 얼마나 나갈까? MG-1P는 배터리를 제외한 기체 무게만 9.7kg이고 배터리가 4kg이다. 팔레트 역할을 하는 겉면을 아주 가볍게 1kg 정도로 만든다고 해도, 화물을 싣기 전의 무게가 벌써 15kg이다. 아마도 화물용으로 튼튼하게 만들면 팔레트론의 무게가 20kg 가까이 나갈 것이다.
게다가 이는 비행역학을 고려하지 않은 수치다. 일반적인 드론의 프로펠러는 위쪽의 바람을 아래로 끌어내리면서 양력을 얻지만, 팔레트론은 상부에 짐을 실어야 하므로 공기 흐름에 방해를 받아 효율이 떨어질 것이다. 따라서 일반 드론보다 더 많은 전력을 소모할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 영상을 다시 보면, 팔레트론의 크기가 큰 것에 비해 짐은 아주 조금 실려 있고, 넓은 계단에서 시연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연구 팀이 만든 팔레트론이 짐을 3kg까지 실을 수 있다고 했는데, 기계적인 설계를 개선하더라도 크게 나아지기는 어려울 듯하다.
과연 이런 운송 수단을 일반 주택, 빌라, 아파트, 사무실 등의 계단에서 사용할 수 있을까?
게다가 택배에 활용하려면 차에 팔레트론을 실을 공간이 필요하므로 그만큼 화물을 실을 공간이 줄어든다. 화물을 내리는 과정도 복잡해진다. 또한 유튜브 댓글에서 많은 사람이 지적했듯이, 소음과 분진도 매우 심하게 발생한다.
이처럼 팔레트론 자체의 실용성이 크지 않아 보여서, 이번 뉴스에 소개된 연구가 빛을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에어택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을 거라는 얘기도 있지만, 과연 에어택시를 사람이 외부에서 밀었을 때 그 의도를 감지해서 작동하게 할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인력거꾼의 손길에서 의도를 파악해 스스로 움직이는 인력거? 그림을 그리고 보니 왠지 스팀펑크 세계관인 것 같다.
아니면 응급 구조사의 손길에서 의도를 파악해 스스로 이동하는 침대?
영상 맨 위에 달린 댓글이 너무 시니컬한 거 아닌가 했지만, 이제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글에서는 팔레트론을 실제 물류 분야에 활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봤다.
막연한 느낌이나 감이 아닌 숫자로 얘기하고자 했고, 결론은 팔레트론 아이디어가 일반적인 배송 용도에 맞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 연구 팀에서 개발한 의도 감지를 통한 팔레트론 자동 조종 기술의 실효성에도 의문을 갖게 됐다.
그렇지만 이 정도 연구를 수행할 능력이 있고 IEEE에 논문을 게재했다는 것은 훌륭하다.
앞으로 더 좋은 성과를 내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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